안녕하세요. 수염오빠입니다.
이 글의 원문은 미투데이 삶과꿈 밴드에 있으며, copyright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여름성경학교 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서 한 번 끄적여 봅니다. 이름하여… 나의 중고등부 연합수련회 참가기. 좀 길 수도 있겠습니다..ㅎㅎ
제가 중고등부 교사로 있을 시절입니다. 약… 5년에서 6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교회 중고등부는 대개 여름이 되면 여름 수련회를 가기 마련입니다. 약간은 연례 행사 같은 느낌이죠. 저희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교회는 중고등부 애들도 부쩍 줄고, 교사 수급도 잘 안되던 터라 사실 여름수련회가 매년 골칫거리(?)였습니다. 안갈 수도 없고, 매년 자체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돈, 시간, 노력이 너무 들고… 효과는 그다지 없고 말이죠…
어느날 목사님께서 좋은 계획이 있다며 교사들을 부르셨습니다. 짜잔~! 전국!! 중고등부 성령대부흥 연합수련회!!! …라는 포스터를 보여주셨습니다. 유명한 분들 얼굴이 주루룩 붙어 있더군요. 저희 학교 교수님도 그 중에 계셨습니다.
저희 목사님은 워낙에 선비같이 조용하신 분이라 사실 청년들이나 학생들을 좀 어려워 하십니다. 그래서 중고등부 운영이나 행사 등 대부분을 젊은 교사들에 의지하셨었는데 그 해에는 그게 어려워지기도 했고, 마침 그런 수련회도 있고 해서 이미 돈 까지 다 내신 후더라고요.
…해서 저희 중고등부는 처음으로 외부 수련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참가인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10명 남짓이었는데, 성도분 자제 몇과 그 자제들이 혼자 가기 싫어서 데려온 불쌍한 희생양(?) 친구들이었습니다.
대전에 있는 모 신학대학교 캠퍼스를 통째로 빌려서 하는 큰 수련회였습니다. 개회집회부터 시끌시끌하더군요. 밴드도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저희 애들이 좀 어색해하는 듯 했으나 이런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오길 잘한거 같다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작은 교회에서는 그런 집회는 생각하기 어려우니깐요. 시작부터 몰아부치더군요.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한 분들이 강사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이라 강당 안은 더웠고, 선풍기와 에어컨이 돌긴 했으나 별로 효과는 없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온 애들까지 돌아볼 겨를은 없었고 일단 저희 애들은 미친듯이 졸더군요 ㅎㅎㅎ
개회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는데 본부에서 나눠준 숙소가 계약할 때 얘기하던 4인실 기숙사 방이 아니라 학교내 작은 예배당을 몇 교회가 나눠 쓰는 식으로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는 듯 해서 본부에 물어봤습니다. 본부에서는 알아본다면서 한 10분 쯤 만에 어떤 간사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계약은 그렇게 된 것이 맞는데 이 수련회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는 바람에 원래는 그 방을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어렵게 됐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계약을 그렇게 했는데 비슷한 조건도 아니고 예배당에 이불 몇장 던져주는거랑 4인실 기숙사랑 같냐고 따졌습니다.
도저히 방을 빼줄 수 없는 상황이라더군요. 좀 어이가 없어서 그럼 돈이라도 일부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일단 그 예배당에서 좀 있으면 자리가 날지도 모르고 나면 바로 불러준다는데… 방이 날 리가 있겠습니까?
목소리가 커지니깐 당시 부장 선생님이셨던 저희 어머니랑 동생 교사들이 와서 말리는 바람에 일단 애들 분위기도 걱정되고 해서 참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얘배당 구석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자고, 공중화장실에서 호스로 샤워를 하는 애들을 보면서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 간사님이 그러시더군요. “믿음으로 받아들이세요, 형제님!”
...믿음으로 사람 칠 뻔 했습니다.
(저는 이미 쳤습니다, 믿음으로 온 힘 모아. - 참자유님)
대충 수련회 일정을 보고 오긴 했지만 실제로 너무 빡빡했고, 10분 쉬고 강의, 10분 쉬고 강의, 밥먹고 집회, 10분 쉬고 강의… 강행군이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도 이런식으로 촘촘히 붙여놓으니 제대로 들리는게 없었습니다. 차라리 그분들을 한 분 한 분 따로 만났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쟁쟁한 분들 섭외하느라 수고는 했겠으나 효과는 정말 의심스러울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자 애들의 얼굴엔 성령은 커녕 병색이 짙어보이는 듯 했습니다. 3박 4일의 수련회 기간 동안 이렇게만 지낼 수는 없겠다 싶어 강의 중에 애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얘들아, 혹시 이 강의 계속 듣고 싶은 사람 있니?”
“아니오~”
"그럼 나가자!"
애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면서 이제야 성령이 좀 충만한 사람 같아 보이더군요. 그냥 제눈에 그랬다는 겁니다 ㅎㅎㅎ 나가려고 하는데 문앞에 서있던 스탭인 듯한 아가씨가 어디 가느냐고 묻더군요.
“너무 덥고 강의도 길어서 애들이 너무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나가서 산책도 좀 하고, 공도 좀 차고 그럴려고요.”
...정말 당시에 디카가 있었다면 그 여자 스탭의 얼굴을 찍어서 보관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은혜로운 말씀이 하늘에서 쏟아지는데 어딜 나가신다고 그러세요?”
오싹했습니다. '네 눈에는 졸고 자빠진 애들이 안보이니?'
“아… 그래도 제가 교사니깐 저희 애들은 제가 알아서 보살피겠습니다. 그러니깐 비켜주세요. 나가게.”
오싹하다가 웃음이 나올 뻔 했습니다. 무전기로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더군요. 대충 듣자하니 뉘앙스가 이게 될일이냐 라는 식으로 약간의 흥분 상태(?)가 되어 얘기를 하더군요. 저보다 어린 대학생 쯤 되는거 같아보였는데… 암튼 무서웠습니다. 어서 나가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일단 문부터 열고 애들은 내보냈습니다. 뒤에서 뭐라뭐라 하는데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전국연합!!! 중고등부들이 다 그 좁아터진 강당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캠퍼스는 한적했습니다. 나무 밑에 돗자리 깔고 남자 여자 섞여서 공차고 간식도 사다 먹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아까 그 여자스탭 분이랑 어떤 남자분이 오시더군요. 간사랍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저 아이들에게 중요한 순간인지 선생님은 잘 모르고 계시는 거 같아서 설명을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오!!! 이건 진짜 무서웠습니다. 도를 아시냐고 집요하게 묻는 도인들과도 비슷한 포스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도를 알아도 낭패요, 몰라도 낭패니, 일단 피하는게 상책)
잘 노는 애들 분위기 망칠까봐 멀리 데려가서 2:1로 붙었습니다. 뭐 어쨋든 저는 자존심 좀 상하고, 그 둘을 저희 아이들에게서 떼어놓는 정도의 성과는 거두었습니다. 유치한 말들이 오갔습니다. 니네 어디 교회인데 이 따위야? 목사님 전화번호 대봐. 뭐 이런식이었죠? ㅎㅎㅎ 어차피 말해도 모를 지방의 조그만 교회라 대화가 더 길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싸우고 나니 저 찜통같은 강당에서 애들을 데리고 나온 제가 스스로 모세 같이 느껴졌다면… 신성모독 쯤 되는건가요? ㅎㅎ
애들도 눈치가 있는지 “우리 선생님 멋지다, 최고다.” 해주면서 기분을 풀어주더군요.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다음날 또 기막힌 사건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저희가 숙소로 사용하던 그 작은 예배당이 프로그램 장소로 사용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찝찝했습니다. 교사들을 위한 세미나 였는데, 애들하고 떨어져서 그 예배당에서 교육 비슷한 것을 하더군요. 물론 본부에서 숙소를 바꿔주겠다는 연락은 예상대로 없었습니다. 세미나 준비팀이 저희가 자는 숙소(예배당)에 들어와서는 개인 짐들을 아무렇게나 막 구석으로 밀어두는 것이 불쾌했습니다.
마지막 3일째 저녁의 집회는 예상대로 부모님 들먹이면서 눈물짜게 만드는 그런 시나리오 였습니다. 신기하게 저희 애들도 울더군요. 교사들이 아이들을 하나 씩 안아주라는 인도자의 요구대로 아이들을 안아주었습니다. 이미 꼬일대로 꼬여서 시키는대로 하긴 싫었습니다만 아이들이 불쌍했습니다.
마지막날 밤이니 으례 아이들은 늦게까지 놀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거지요. 예배당은 자는 곳이라 놀 수 없으니 데리고 나와서 밖에서 놀았습니다. 물론 뭐 야간 순찰이 방해를 좀 했지만… 다 끝난 마당에 거칠 것 없었습니다.
마지막 4일 째 오전, 정성스럽지 않은 수련회 식당밥도 먹기 싫어서 근처에 맛집에 들러 애들과 같이 식사 하고 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들에게 재밌었느냐고 묻지는 못했습니다. 미안하다고 해주지도 못했습니다.
다시는 연합수련회 같은 것은 참가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주 최악의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은…
대한민국 교육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악행들이 교회 내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뿌리내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정말 겁이 났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옳고 기준을 이탈한 당신(나)은 이단이라 모는 것의 근거가 어디에서 부터인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고보니… 맘에 안들면 무조건 "좌빨"이라 치부하는 요새 이명박 정부와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강사들을 섭외하는 그 마음은 좋은데, 그 시스템을 위해서 역으로 아이들이 희생되어야 된다는 논리가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던 그런 경험입니다. ㅎㅎ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고, 느낌입니다. 재미 없으셨더라도 좀 이른 납량 특집 정도로 읽어주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미투데이 삶과꿈 밴드에 있으며, copyright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여름성경학교 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서 한 번 끄적여 봅니다. 이름하여… 나의 중고등부 연합수련회 참가기. 좀 길 수도 있겠습니다..ㅎㅎ
제가 중고등부 교사로 있을 시절입니다. 약… 5년에서 6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교회 중고등부는 대개 여름이 되면 여름 수련회를 가기 마련입니다. 약간은 연례 행사 같은 느낌이죠. 저희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교회는 중고등부 애들도 부쩍 줄고, 교사 수급도 잘 안되던 터라 사실 여름수련회가 매년 골칫거리(?)였습니다. 안갈 수도 없고, 매년 자체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돈, 시간, 노력이 너무 들고… 효과는 그다지 없고 말이죠…
어느날 목사님께서 좋은 계획이 있다며 교사들을 부르셨습니다. 짜잔~! 전국!! 중고등부 성령대부흥 연합수련회!!! …라는 포스터를 보여주셨습니다. 유명한 분들 얼굴이 주루룩 붙어 있더군요. 저희 학교 교수님도 그 중에 계셨습니다.
저희 목사님은 워낙에 선비같이 조용하신 분이라 사실 청년들이나 학생들을 좀 어려워 하십니다. 그래서 중고등부 운영이나 행사 등 대부분을 젊은 교사들에 의지하셨었는데 그 해에는 그게 어려워지기도 했고, 마침 그런 수련회도 있고 해서 이미 돈 까지 다 내신 후더라고요.
…해서 저희 중고등부는 처음으로 외부 수련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참가인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10명 남짓이었는데, 성도분 자제 몇과 그 자제들이 혼자 가기 싫어서 데려온 불쌍한 희생양(?) 친구들이었습니다.
대전에 있는 모 신학대학교 캠퍼스를 통째로 빌려서 하는 큰 수련회였습니다. 개회집회부터 시끌시끌하더군요. 밴드도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저희 애들이 좀 어색해하는 듯 했으나 이런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오길 잘한거 같다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작은 교회에서는 그런 집회는 생각하기 어려우니깐요. 시작부터 몰아부치더군요.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한 분들이 강사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이라 강당 안은 더웠고, 선풍기와 에어컨이 돌긴 했으나 별로 효과는 없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온 애들까지 돌아볼 겨를은 없었고 일단 저희 애들은 미친듯이 졸더군요 ㅎㅎㅎ
개회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는데 본부에서 나눠준 숙소가 계약할 때 얘기하던 4인실 기숙사 방이 아니라 학교내 작은 예배당을 몇 교회가 나눠 쓰는 식으로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는 듯 해서 본부에 물어봤습니다. 본부에서는 알아본다면서 한 10분 쯤 만에 어떤 간사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계약은 그렇게 된 것이 맞는데 이 수련회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는 바람에 원래는 그 방을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어렵게 됐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계약을 그렇게 했는데 비슷한 조건도 아니고 예배당에 이불 몇장 던져주는거랑 4인실 기숙사랑 같냐고 따졌습니다.
도저히 방을 빼줄 수 없는 상황이라더군요. 좀 어이가 없어서 그럼 돈이라도 일부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일단 그 예배당에서 좀 있으면 자리가 날지도 모르고 나면 바로 불러준다는데… 방이 날 리가 있겠습니까?
목소리가 커지니깐 당시 부장 선생님이셨던 저희 어머니랑 동생 교사들이 와서 말리는 바람에 일단 애들 분위기도 걱정되고 해서 참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얘배당 구석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자고, 공중화장실에서 호스로 샤워를 하는 애들을 보면서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 간사님이 그러시더군요. “믿음으로 받아들이세요, 형제님!”
...믿음으로 사람 칠 뻔 했습니다.
(저는 이미 쳤습니다, 믿음으로 온 힘 모아. - 참자유님)
대충 수련회 일정을 보고 오긴 했지만 실제로 너무 빡빡했고, 10분 쉬고 강의, 10분 쉬고 강의, 밥먹고 집회, 10분 쉬고 강의… 강행군이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도 이런식으로 촘촘히 붙여놓으니 제대로 들리는게 없었습니다. 차라리 그분들을 한 분 한 분 따로 만났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쟁쟁한 분들 섭외하느라 수고는 했겠으나 효과는 정말 의심스러울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자 애들의 얼굴엔 성령은 커녕 병색이 짙어보이는 듯 했습니다. 3박 4일의 수련회 기간 동안 이렇게만 지낼 수는 없겠다 싶어 강의 중에 애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얘들아, 혹시 이 강의 계속 듣고 싶은 사람 있니?”
“아니오~”
"그럼 나가자!"
애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면서 이제야 성령이 좀 충만한 사람 같아 보이더군요. 그냥 제눈에 그랬다는 겁니다 ㅎㅎㅎ 나가려고 하는데 문앞에 서있던 스탭인 듯한 아가씨가 어디 가느냐고 묻더군요.
“너무 덥고 강의도 길어서 애들이 너무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나가서 산책도 좀 하고, 공도 좀 차고 그럴려고요.”
...정말 당시에 디카가 있었다면 그 여자 스탭의 얼굴을 찍어서 보관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은혜로운 말씀이 하늘에서 쏟아지는데 어딜 나가신다고 그러세요?”
오싹했습니다. '네 눈에는 졸고 자빠진 애들이 안보이니?'
“아… 그래도 제가 교사니깐 저희 애들은 제가 알아서 보살피겠습니다. 그러니깐 비켜주세요. 나가게.”
오싹하다가 웃음이 나올 뻔 했습니다. 무전기로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더군요. 대충 듣자하니 뉘앙스가 이게 될일이냐 라는 식으로 약간의 흥분 상태(?)가 되어 얘기를 하더군요. 저보다 어린 대학생 쯤 되는거 같아보였는데… 암튼 무서웠습니다. 어서 나가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일단 문부터 열고 애들은 내보냈습니다. 뒤에서 뭐라뭐라 하는데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전국연합!!! 중고등부들이 다 그 좁아터진 강당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캠퍼스는 한적했습니다. 나무 밑에 돗자리 깔고 남자 여자 섞여서 공차고 간식도 사다 먹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아까 그 여자스탭 분이랑 어떤 남자분이 오시더군요. 간사랍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저 아이들에게 중요한 순간인지 선생님은 잘 모르고 계시는 거 같아서 설명을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오!!! 이건 진짜 무서웠습니다. 도를 아시냐고 집요하게 묻는 도인들과도 비슷한 포스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도를 알아도 낭패요, 몰라도 낭패니, 일단 피하는게 상책)
잘 노는 애들 분위기 망칠까봐 멀리 데려가서 2:1로 붙었습니다. 뭐 어쨋든 저는 자존심 좀 상하고, 그 둘을 저희 아이들에게서 떼어놓는 정도의 성과는 거두었습니다. 유치한 말들이 오갔습니다. 니네 어디 교회인데 이 따위야? 목사님 전화번호 대봐. 뭐 이런식이었죠? ㅎㅎㅎ 어차피 말해도 모를 지방의 조그만 교회라 대화가 더 길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싸우고 나니 저 찜통같은 강당에서 애들을 데리고 나온 제가 스스로 모세 같이 느껴졌다면… 신성모독 쯤 되는건가요? ㅎㅎ
애들도 눈치가 있는지 “우리 선생님 멋지다, 최고다.” 해주면서 기분을 풀어주더군요.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다음날 또 기막힌 사건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저희가 숙소로 사용하던 그 작은 예배당이 프로그램 장소로 사용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찝찝했습니다. 교사들을 위한 세미나 였는데, 애들하고 떨어져서 그 예배당에서 교육 비슷한 것을 하더군요. 물론 본부에서 숙소를 바꿔주겠다는 연락은 예상대로 없었습니다. 세미나 준비팀이 저희가 자는 숙소(예배당)에 들어와서는 개인 짐들을 아무렇게나 막 구석으로 밀어두는 것이 불쾌했습니다.
마지막 3일째 저녁의 집회는 예상대로 부모님 들먹이면서 눈물짜게 만드는 그런 시나리오 였습니다. 신기하게 저희 애들도 울더군요. 교사들이 아이들을 하나 씩 안아주라는 인도자의 요구대로 아이들을 안아주었습니다. 이미 꼬일대로 꼬여서 시키는대로 하긴 싫었습니다만 아이들이 불쌍했습니다.
마지막날 밤이니 으례 아이들은 늦게까지 놀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거지요. 예배당은 자는 곳이라 놀 수 없으니 데리고 나와서 밖에서 놀았습니다. 물론 뭐 야간 순찰이 방해를 좀 했지만… 다 끝난 마당에 거칠 것 없었습니다.
마지막 4일 째 오전, 정성스럽지 않은 수련회 식당밥도 먹기 싫어서 근처에 맛집에 들러 애들과 같이 식사 하고 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들에게 재밌었느냐고 묻지는 못했습니다. 미안하다고 해주지도 못했습니다.
다시는 연합수련회 같은 것은 참가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주 최악의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은…
대한민국 교육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악행들이 교회 내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뿌리내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정말 겁이 났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옳고 기준을 이탈한 당신(나)은 이단이라 모는 것의 근거가 어디에서 부터인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고보니… 맘에 안들면 무조건 "좌빨"이라 치부하는 요새 이명박 정부와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강사들을 섭외하는 그 마음은 좋은데, 그 시스템을 위해서 역으로 아이들이 희생되어야 된다는 논리가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던 그런 경험입니다. ㅎㅎ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고, 느낌입니다. 재미 없으셨더라도 좀 이른 납량 특집 정도로 읽어주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